편의점 도시락, 시리얼, 소시지, 제로 음료. 요즘 "초가공식품을 피하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런데 정작 무엇이 초가공식품인지 물으면 답하기가 애매합니다. 라면은 확실한 것 같은데 두유는요? 단백질 파우더는요? 게다가 "가공식품이 다 나쁘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오늘은 이 개념이 정확히 무엇이고, 근거는 어디까지 밝혀졌는지 정리해보겠습니다.

🏭 초가공식품이란, 무엇을 말하나
먼저 정의부터 보겠습니다. 초가공식품은 통상적으로 가정에서 사용하지 않는 첨가물이 함유되거나 산업적 공정을 거친 식품을 말합니다. 감미료, 착색료, 유화제 같은 화학 첨가물이 다량 포함된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핵심은 '가공을 얼마나 했느냐'보다 '가정의 부엌에서 만들 수 있느냐' 에 가깝습니다. 집에서 두부를 만들 수는 있어도 유화제나 인공감미료를 넣는 일은 없으니까요.
(출처: 유유제약 건강칼럼 — https://yuyu.co.kr/blog/9315106d-dee1-4896-8870-7778c37e0b38/)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해당될까요. 흔히 언급되는 목록은 이렇습니다.
가당 음료, 탄산음료
스낵과 쿠키, 초콜릿, 사탕
공장에서 만든 빵과 케이크
아침 식사용 시리얼
즉석 편의식품, 인스턴트식품, 패스트푸드
'건강한 아침'의 대명사인 시리얼이 목록에 들어 있는 것이 눈에 띕니다. 이름과 이미지만으로는 판단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한국인은 얼마나 먹고 있을까요. 연세대 의대 심지선 교수 연구팀이 2016~2018년 국민건강영양조사 참여자 2만 1,075명을 분석한 결과, 우리 국민은 하루 총 섭취 열량의 4분의 1 이상을 초가공식품에서 얻고 있었습니다.
더 눈에 띄는 것은 당류입니다. 한국인의 하루 총당류 섭취량은 평균 63.1g인데, 이 중 44.9%가 초가공식품에서 나옵니다. 매일 먹는 당의 절반 가까이가 여기서 오는 셈입니다.
(출처: 의학신문 — http://www.bosa.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79421)
왜 문제가 되는지도 짚어두겠습니다. 초가공식품은 나트륨과 당이 과도하게 들어 있는 반면 항산화 영양소나 식이섬유는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즉 열량은 높은데 영양 밀도는 낮은 구조입니다.
그리고 이런 식품이 우리 식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 늘고 있습니다. 단국대 연구팀이 성인 1만 5,760명을 분석한 결과, 총 식품 섭취량 중 원재료 식품은 31.9%인 반면 가공식품은 68.1%였습니다. 1인 가구와 맞벌이가 늘면서 나타난 변화로 설명됩니다.
(출처: 고양신문 — https://www.mygoyang.com/news/articleView.html?idxno=60292)
저는 이 숫자들을 보고 제 하루를 되짚어봤습니다. 아침에 시리얼, 점심에 편의점 도시락, 오후에 커피와 쿠키. 여기까지만 세어도 이미 상당한 비중이더군요. "나는 그렇게 인스턴트를 많이 먹지는 않는데"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제가 초가공식품이라고 인식조차 못 한 것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 NOVA 분류, 4단계로 나눠 보기
이 개념의 기준이 되는 것이 NOVA 분류체계입니다. 식품을 가공 정도에 따라 1군부터 4군까지 나눕니다.
* 1군 (자연식품·최소가공식품) — 채소, 과일, 고기, 우유, 달걀. 급속 냉동한 채소와 과일도 여기 속합니다.
* 2군 (조리용 재료) — 소금, 설탕, 기름, 버터
* 3군 (가공식품) — 1군에 2군을 더해 만든 것. 치즈, 통조림, 갓 구운 빵. 통곡물 함량이 높고 첨가물이 적은 통밀빵·호밀빵도 여기 해당합니다.
* 4군 (초가공식품) — 산업적 공정과 첨가물이 들어간 식품
여기서 자주 나오는 오해 두 가지를 짚고 가겠습니다.
냉동 채소는 초가공식품일까요? 아닙니다. 신선도 유지를 위해 급속 냉동한 채소와 과일은 1군에 속합니다. 오히려 보관 기간이 길고 영양소 손실이 적어 좋은 재료로 꼽힙니다.
'무설탕'이나 '저지방'이라면 괜찮을까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단순히 설탕이나 지방을 뺀 것이 아니라, 그 맛을 내기 위해 인공 감미료나 합성 첨가물을 더 많이 넣은 경우가 있습니다. 칼로리만 낮을 뿐 장내 미생물에는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출처: 유유제약 건강칼럼 — https://yuyu.co.kr/blog/9315106d-dee1-4896-8870-7778c37e0b38/)
저는 이 분류를 보고 냉동실을 다시 봤습니다. 냉동 브로콜리를 사놓고 "그래도 신선한 게 낫겠지" 하며 잘 안 먹었거든요. 알고 보니 1군이었는데 말이죠. 반면 매일 마시던 제로 음료는 4군이었고요. 제 머릿속 순위가 실제와 정반대였던 셈입니다.
🔬 임상시험 결과, 무엇이 확인됐나
가장 강력한 근거는 미국 국립보건원(NIH) 케빈 홀 박사팀의 무작위 임상시험입니다. 2019년 Cell Metabolism에 실린 연구인데, 설계가 인상적입니다.
두 식단의 칼로리, 지방, 탄수화물, 당, 나트륨, 식이섬유, 혈당지수를 모두 맞춘 뒤 한쪽은 초가공식품으로, 다른 한쪽은 비가공식품으로 구성했습니다. 그리고 참가자들이 원하는 만큼 먹게 했습니다.
결과는 초가공식품 식단에서 과잉 칼로리 섭취와 체중 증가가 나타났습니다. 영양 성분을 동일하게 맞췄는데도 말이죠. 흥미롭게도 참가자들이 보고한 식욕 지표에는 차이가 없었습니다. 배가 더 고팠던 게 아니라 그냥 더 먹게 됐다는 뜻입니다.
(출처: NIH 케빈 홀 박사 연구 자료 — https://www.foodpolitics.com/wp-content/uploads/Hall-ImperialUPF2024pdf.pdf)
국내 연구도 있습니다. 질병관리청이 비만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초가공식품 섭취가 가장 많은 군(상위 1/3)은 가장 적은 군에 비해 이런 차이를 보였습니다.
지방간 위험 1.75배
인슐린 저항성 위험 2.44배
중등도 이상 지방간 위험 4.19배
또 섭취 식품 중 초가공식품 비율이 10% 증가할 때마다 중등도 이상 지방간 유병 위험은 1.37배, 인슐린저항성 유병 위험은 1.3배 증가했습니다.
(출처: 질병관리청 보도자료 — https://www.kdca.go.kr/board/board.es?mid=a20501020000&bid=0015&list_no=726416)
앞서 지방간 글에서 "술 안 마시는 20대도 지방간에 걸린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 배경 중 하나가 여기 있는 셈입니다.
⚖️ 오해와 진실, 다 나쁜 건 아닙니다
여기서 균형을 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초가공식품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수준으로 해로운 것은 아니라는 견해도 존재합니다.
대규모 관찰 연구들에서 초가공식품 섭취 비율이 높을수록 만성질환 위험이 증가하는 경향이 관찰된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이것이 명확한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은 아니며, 영양 밀도가 높은 일부 가공식품은 오히려 식단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실제로 건강식으로 인식되는 것들 중에도 NOVA 기준상 초가공식품에 해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단백질 파우더입니다. 우유나 완두콩에서 단백질을 추출·분리하는 고도의 정제 과정을 거치기 때문입니다. 앞서 다룬 주제인데, 이것만으로 "먹지 말아야 할 것"이 되지는 않겠죠.
(출처: 하이닥 — https://news.hidoc.co.kr/news/articleView.html?idxno=59021)
초가공식품 연구를 이끈 케빈 홀 박사 본인도 초가공식품 중에서도 건강한 선택지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의 권고는 무조건적인 배제보다 선별 섭취 쪽에 가깝습니다. 성분표를 확인해 무엇이 들었는지 보고 판단하라는 것이죠.
솔직히 저는 이 부분에서 좀 안심했습니다. "초가공식품 = 절대 금지"로 받아들이면 현실적으로 지킬 수가 없거든요. 편의점도 못 가고 외식도 못 하니까요. 그런데 완벽하게 피하는 게 목표가 아니라 비율을 줄이는 게 목표라면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줄이는 법, 비율의 문제로 접근하기
실천 방향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성분표 읽는 습관 이름을 모르는 성분이 여러 개 나열돼 있다면 초가공식품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유화제, 인공감미료, 착색료 같은 항목을 확인해보세요.
2. '무설탕·저지방' 표시를 무조건 믿지 않기 빠진 것을 무엇으로 채웠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3. 냉동 채소·과일 적극 활용 1군에 속하면서 보관도 편합니다. "신선한 것만 좋다"는 생각 때문에 오히려 채소를 못 먹는 것보다 낫습니다.
4. 한 끼만 바꾸기 모든 식사를 자연식으로 바꾸려다 실패하기보다, 하루 한 끼나 간식 하나를 바꾸는 편이 지속 가능합니다.
5. 비율로 생각하기 질병관리청 연구에서도 위험은 '먹었나 안 먹었나'가 아니라 섭취 비율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10%씩 줄이는 것에도 의미가 있다는 뜻입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초가공식품 연구는 아직 진행 중인 분야입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 첨가물인지, 식감인지, 먹는 속도인지 — 그 기전은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이건 절대 안 돼"라는 식의 단정보다는, 현재까지의 근거를 참고해 본인의 식단에서 조정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보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저는 요즘 장을 볼 때 카트를 한 번 내려다봅니다. 절반 이상이 봉지에 든 것이면 채소 코너로 한 번 더 돌아가고요. 완벽하진 않지만, 적어도 제가 무엇을 사고 있는지는 알게 됐습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건강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의학적 진단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대사질환이나 체중 관리가 걱정되신다면 내과 전문의 또는 임상영양사와의 상담을 권해드립니다.